자신을 굽히는 사람과 남을 이기기 좋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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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굽히는 사람과 남을 이기기 좋아하는 사람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8.08.17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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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8강 계성편(戒性篇)…성품을 경계하라⑥
▲ 젊은 건달의 가랑이 밑을 기어서 지나가는 한신.

[명심보감 인문학] 제8강 계성편(戒性篇)…성품을 경계하라⑥

[한정주=역사평론가] 景行錄云(경행록운) 屈己者(굴기자)는 能處重(능처중)하고 好勝者(호승자)는 必遇敵(필우적)이니라.

(『경행록』에서 말하였다. “자신을 굽히는 사람은 중요한 자리에 오를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이기기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적수를 만나게 된다.”)

“屈己者(굴기자) 能處重(능처중)”, 즉 “자신을 굽히는 사람은 중요한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여기 이 구절에 가장 적합한 인물로는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그 사람은 유방이 천하통일을 하는데 있어서 일등 공신 역할을 한 명장 한신(韓信)이다.

한신 하면 누구나 쉽게 떠올리는 고사성어가 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먹는다는 뜻의 ‘토사구팽(兎死狗烹)’이다. 잘 알다시피 천하통일을 한 다음 한신의 재능과 세력을 두려워한 유방이 그를 제거한 데서 유래한 고사성어가 ‘토사구팽’이다.

반면 한신이 아직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는 주군을 만나지 못해 남을 따라다니며 밥과 술을 빌어먹고 사는 한심한 신세를 벗지 못하고 있던 때, 즉 입신출세하기 전 한신에게서 나온 고사성어가 ‘과하지욕(跨下之辱)’이다.

한신의 고향인 회음(淮陰) 사람들은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며 빌어먹고 사는 한신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빌어먹는 한량 주제에 장대한 키에 칼을 차고 다니는 한신의 모습을 업신여긴 한 젊은 건달이 길을 탁 막고 시비를 걸었다.

그러면서 “네놈이 나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그 칼로 나를 찌르고, 나를 두려워한다면 내 가랑이 사이로 기어서 지나가라”고 위협했습니다. 한참 동안 젊은 건달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한신은 별반 주저함 없이 그의 가랑이 밑으로 기어서 지나갔다.

이 일이 있은 후 회음 사람들은 더욱 한신을 비웃고 업신여기게 되었다. ‘과하지욕’이란 바로 한신이 젊은 건달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서 지나간 치욕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신이 이렇게 한 까닭은 무엇일까? 큰 뜻을 품은 사람은 작은 일을 참고 견디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보전할 줄 알아야 비로소 뜻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 필요가 없다는 얘기이고, 큰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치욕을 참고 견뎌내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 점에 대해서는 공자 역시 “小不忍則亂大謀(소불인즉난대모)”는 말을 남겼습니다. 다시 말해 “작은 일을 참지 못하면 큰 뜻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好勝者(호승자) 必遇敵(필우적)”, 곧 “다른 사람을 이기기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적수를 만나게 된다”는 구절은 “백전백승(百戰百勝) 비선지선자야(非善之善者也)”, 즉 “백 번 싸워서 백 번 이기는 것은 최선이라고 할 수 없다”는 『손자병법』의 경구(驚句)를 떠올리게 한다.

여기 『명심보감』과 『손자병법』의 가르침은 ‘이기기를 좋아하고 싸울 때마다 이기는 사람은 위태롭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기기를 좋아하고 싸울 때마다 이기는 사람은 왜 위태로울까? 신이 아닌 이상 그도 언젠가는 반드시 제대로 된 적수를 만나 패배하게 될 것이다. 그러할 경우 이기는 방법만 알 뿐 지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자칫 몰락의 구렁텅이로 추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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