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 수호의 완충장치로 활용된 ‘무과’…『조선 무인의 역사, 1600~18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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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 수호의 완충장치로 활용된 ‘무과’…『조선 무인의 역사, 1600~1894년』
  • 이성태 기자
  • 승인 2018.08.14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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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원 화가인 한시각이 1664년(현종5년) 함경도 길주목에서 실시된 문무과 과거 시험 장면을 그린 북새선은도(北塞宣恩圖).

조선시대 처음 무과시험이 시행된 것은 1402년 2월이었다. 15세기 두 차례의 무과가 치러졌고 합격자는 100여명에 불과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 해인 1591년까지만 해도 무과급제자는 7758명이었다.

그런데 임진왜란 이후 1592년부터 1607년까지는 대략 2만명에서 4만명 정도의 응시자들이 무과에 합격했다. 그리고 1608년에서 1894년 사이에는 그 수가 12만1623명으로 불어났다. 1592년 이전 조선 초기와 비교하면 무려 15배가 증가한 수치다.

1402년부터 1592년까지 대략 160번 정도의 무과가 치러졌는데 1592년부터 1894년까지는 적어도 535번이 시행됐다. 대략 15개월에 한 번에서 6개월에 한 번씩으로 시행횟수가 증가한 것이다.

신간 『조선 무인의 역사, 1600~1894년』(푸른역사)은 왜 조선 조정은 무과를 지속적으로 시행했는지 그리고 백성들은 합격하더라도 무관이 될 수 없었던 무과에 왜 끊임없이 응시했는지에 대해 질문과 함께 답을 제시한다.

1608년부터 1894년 사이 실시된 총 477회의 무과에 대해 현존하는 자료를 기반으로 피에르 부르디외의 ‘문화자본(cultural capital)’이라는 개념을 이용해 무과와 같은 조선 후기의 특정 제도들이 어떻게 피지배층들의 신분상승에 대한 욕구를 인식하는 데 도움을 주었는지, 그리고 정부의 부정부패와 농민의 몰락과 같은 문제가 계속되는데도 왕조가 지속되는 데 어떻게 공헌했는지를 설명한다.

흥미로운 점은 1592년 여름 사간원의 상소에 따르면 무과에서 요구하는 기준이 너무 낮아 응시자들 중에는 활을 한 번 잡아보지도 않은 자들이나 노인들 혹은 연약한 아이들까지도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1609~1894년 사이 실시된 무과 가운데 254번의 무과에서는 한번에 100명이 넘는 합격자가 양산됐는데 합격자들이 실제 활을 제대로 쏘지 못해도 합격할 수 있을 정도였다. 더 이상 무과가 국방을 위한 순수한 의도로 시행되지 않았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급기야 1620년 1만명이 넘는 무과급제자가 양산된 것과 관련 ‘만과(萬科)’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이와 관련 저자는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한계를 조선 조정은 무과를 통해 일정 부분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지배층들이 독점적으로 향유했던 문화의 일부인 과거 합격이라는 중요한 관문, 특히 무과의 관문을 피지배층에게 조금씩 양보하며 체제불만이라는 충격을 흡수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무관의 지위하락에도 무과 합격증서인 홍패(紅牌)를 받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백성들이 많았다는 반증이다.

특히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국가는 무과급제로 수여하는 직위와 무과제도를 피지배층 사이에서 잠재적인 체제 전복적 요소들이 봉기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안전망으로 사용했다.

저자는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는 동안 정부는 마지막 무과를 시행했다”며 “이런 불만을 가진 자들이 체제를 전복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는 것은 이렇게 불만이 널리 퍼져 있는 와중에도 국가가 많은 이들이 갖고 있던 신분상승에 대한 욕구를 제한적으로라도 해결해주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저자인 유진 Y. 박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양반, 특히 문신으로 불리는 이들이 어떤 사회적 제도를 이용해 특권을 유지하며 세습해 나갔는지 과거(科擧), 결혼, 입양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이를 확인하고 있다.

연대기 자료를 포함해 문․무과 급제자의 합격자 명단을 바탕으로 저자의 해박한 보학(譜學) 지식을 더해 인적 네트워크를 밝히고 그 네트워크가 어떻게 양반을 귀족으로 불리도록 만들었는지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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