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인간의 공공생활을 위한 수단”…『지금 다시, 칼 폴라니』
상태바
“경제는 인간의 공공생활을 위한 수단”…『지금 다시, 칼 폴라니』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7.03.16 08: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세기 중반 사회과학자 칼 폴라니는 ‘좋은 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할 시장경제가 거꾸로 사회보다 우선시된 것이 보통 사람들의 삶을 황폐화시키고 20세기 초의 비극을 불러왔다고 주장했다.

19세기 산업혁명 당시 대량생산을 위해 인간의 노동력을 상품화한 것이 그 시작이었고, 그때 이후로 ‘경제적 자유’는 줄곧 ‘인간 사회’보다 우위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지적은 과거완료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오늘날의 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대량 실업과 인간 노동의 근원적 변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것은 그의 대표작 『거대한 전환』에서 분석했던 19세기 산업혁명과 인간 노동력의 상품화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경제적 자유주의는 신자유주의로 얼굴만 바꾸었을 뿐 시장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무력화하고 화폐가 인간의 삶을 지배하도록 직간접적으로 종용하며 광범위한 국제분쟁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신간 『지금 다시, 칼 폴라니』(생각의힘)는 폴라니의 삶과 ‘극단의 시대’로 불린 당대의 풍경 그리고 폴라니 사상의 정수를 간추린 책이다.

사회과학 분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폴라니의 대표작이지만 소화하기 까다로운 책으로 정평이 난 『거대한 전환』 등 저서들과 그의 사상을 역사적인 흐름 속에서, 동시대 다른 사상가들과의 맥락 속에서 조망함으로써 입문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또한 케인스, 슘페터, 베버, 오언, 하이에크 등 동시대 사회과학자와 경제학자들의 주장과 어떤 면에서 궤를 같이 하고 어떤 지점에서 멀어지는지를 살펴보며 20세기 사회와 경제의 지형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

특히 폴라니의 사상은 정치적 좌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비판하면서도 마르크스주의에는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폴라니에 따르면 경제적 자유주의가 완전한 경제를 가정한다면 마르크스주의 역시 완전한 사회를 가정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폴라니는 경제 영역과 정치 영역의 분할을 상정하는 이들의 사고방식이 자본주의 경제 영역을 찬미하든 부정하든 결국 경제결정론적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경제가 사회 안에서, 사회를 위해 기능하던’ 고대 그리스의 경제생활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시장사회의 병리를 이해하는 데 대단히 현대적인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폴라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를 인용하면서 아테네의 폴리스에는 ‘좋은 생활’이라는 목적이 존재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공공생활’이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때 경제는 공공생활을 위한 수단으로 ‘사회 속에 위치’하고 있었다.

시장과 교역, 화폐 제도를 창안한 그리스인들은 시장이 악용될 위험성을 알았기 때문에 시장을 철저히 공공생활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다. 또한 민주제를 유지하기 위해 시민이 빈곤에 처하지 않도록 했다. 그것은 아테네가 도시국가로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으며, 그때 그리스 문명은 전성기를 경험했다.

결국 폴라니가 그린 세상은 인간을 사고팔 수 없는 사회이자 경제가 인간의 공동체를 위해 존재하는 사회다.

폴라니의 이러한 사회관은 이론적 이상 사회에 머무르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사회적경제’의 이론적 기초를 다지는 일에 그의 사상이 가장 중요한 지적 원천을 제공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